::::::::::율곡서당에 오신걸 환영합니다::::::::::
무제 문서
무제 문서
 
 
 
> 게시판 > 알림방     
 
   
  ♣서전주중학교 재량활동 "서당반" 부안 전우간재선생 계양사 견학 8.21(토)9시
  글쓴이 : 明倫     날짜 : 10-08-20 12:32     조회 : 5159    
♣간재(艮齋) 전우(田愚) 선생님의 생애-계양사 견학

  공자(孔子)는 춘추전국시대의 어지러운 세상에서 "도(道)가 행해지지 않으니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가겠다.(道不行 乘柎浮于於海:<논어>, 공야장편)" 라고 말하였다. 한말의 격동기에 일제의 침략으로 국권을 상실하는 참담한 좌절 속에서 공자의 이러한 말을 쫓아 서해 절해의 고도 왕등도로 들어갔다가 부안의 계화도에서 일생을 마친 도학자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한말의 거유(巨儒), 간재(艮齋) 전우(田愚)선생이시다.
1841(헌종 7)∼1922.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본관은 담양(潭陽). 초명은 경륜(慶倫) 또는 경길(慶佶).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 전주에서 태어나 서문밖 청석동(靑石洞)에서 자랐어며, 어려서부터 학문이 뛰어나, 14세때 에는 아버지를 따라 서울 정동·삼청동·순화동(順化洞)등에서 살았는데, 이때부터 임헌회(任憲晦)선생의 사랑을 받기 시작하였으며, 21세때에는 전제 임헌회선생을 직접 아산의 신양(新陽)으로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었다. 임헌회선생이 죽을 때까지 아산·전의·연기·진천·상주·문천 등지에 따라 살면서 학문을 연마하였다. 후학들을 가르치는 한편, 《오현수언 五賢粹言》·《안자편 顔子篇》·《연원정종 淵源正宗》등을 편찬하여 많은 학문적 영향을 끼치게 되었어며,1882년(고종 19)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 감역,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강원도지사, 1894년 사헌부장령, 이듬해 순흥부사, 중추원찬의(中樞院贊議)를 제수받았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72세 되던 해에 계화도(界火島)에 정착하고, 계화도(繼華島:중화를 잇는다는뜻)라 부르면서 82세 임종까지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었으며 60여책의 저서를 남겼어며,지금의 계화도에 있는 집은 모두 당시의 제자들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
선생의 학문종지는 심본성 (心本性) 성존심비 성사심제 (性尊心卑 性師心弟) 이다.  42세(1882) 에 강직 청렴 결백한 인품과 학덕이 전해지자 고종황제께서8월19일 繕工監 監役  9월 15일 典設司別提와 江原道 都事를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54세 (1894)에 정3품 通政大夫 司憲府 掌令 제수하였으나 나가지 않았다 
 65세 (1905) 에을사늑약 ( 乙巳勒約)을 당하야 청참오적 청폐늑약상소(請斬 五賊 請廢勒約  上疏)를 올려  가내지언(嘉乃之言=너의말이옳다) 의 비답이있었다.
 일왕 명치유인의 시부지죄(弑父之罪)를 규탄하고 명치를축출하고  현자를 갱택하여 일왕 교체하고 세계 평화 신질서확립 하자는 천하포고문을 발표 하였는데 일본이 묵인 전술로 허사되였다.
 66세 (1906) 11월에 중추원 찬의에 제수되였으나 나가지 안았다
 79세 (1919)에 1월 19일 倭인 광무황제 시해 소식듣고  통분을 참지못하고 황제 만세 대한독립 만세를 불으고 침식을 끊고 뒷산에 올라 수주일을 통곡하고 3년 복을 입었다
 영남 진해 李秀洪이 불원천리  찾아와서 석농오진영을 통하여 파리대회에 보낼 공함을 써주면 직접 파리에 다녀오겠다고함에  오진영에게 파리장서 초안을 작성케하고  인장을 주어 진해이수홍을 만나 숙의하라 하였는데 오진영이 파리장서 초안과 간재선생 인장을 가지고  영남  진해로 이수홍을 만나러갔는데  이수홍은 독립 만세불으다가  화를 당하여 집에 없어서 만나지못하여 실패하였다 한다. 82세에 임종에 이르기까지 유학자의 선비며, 후학의 傳道之師로, 항일독립운동으로 후학들의 사표의 모범이 되고 있으며,  율곡학파의 사제전승의 진유로 추앙 받고 있다.

   

 
무제 문서
  율곡서당 총 방문손님 : 408,813
  오늘방문손님 : 10